Lee, In woo

바람보다 먼저
2014-06-27 ~ 2014-07-03

"바람보다 먼저" 작업 Note

1. 런민(人民) 속으로.

다른 사람들은 불혹의 나이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하는데, 누구는 볼혹의 나이에 하던 일을 그만두고 카메라 하나만 들고, 길 위의 인생을 선택했다. 그곳은 중국이었다. 그 이전부터 수많은 중국 사진을 보았었다.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비롯하여, 중국 소수민족의 생활상, 그리고 유명 관광지 등등. 하지만 그것과는 다르게 내 카메라가 갈 곳을 정해야 했다.
내가 살았던 중국의 대도시들은 항상 공사 중이었다. 수많은 크레인들이 어딜 가나 굉음을 내며 긴 그림자를 내리고 있었다. 그렇게 도심 곳곳에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건물들이 잿빛 하늘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산업화에 따른 도시화가 잃어 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에, 잃지 말아야 할 것은 잃어선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그 개발의 뒷면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도시 한복판에서, 도시의 변두리에서, 옛 거리는 사라지고 있었다. 아파트를 짓기 위해 오래된 골목들은 철거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이주를 해야 했다. 결국 이윤을 위해 기존의 삶이 부인되는 꼴이었다.
그런 곳을 중심으로, 그곳 사람들의 삶을 찍었다. 소통의 한계 때문에 더 가깝게 천착해서 담지 못했다는 것이 가장 아쉽다. 하지만 그들을 대상화하지 않으면서도 객관적으로 찍기 위해 노력했다. 관광객들처럼 대상화하여 그들을 담을 순 없었다. 그렇다고 주관적 연민으로 그들을 담는 것은 무례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삶을 공감하고, 그들의 삶을 객관적으로 담아내는 것. 그것이 내가 선택한 리얼리즘의 태도라고 생각했다.
막상 내어놓으려 하니 많이 부끄럽다. 하지만 언젠가 다시 중국에 가서 더 좋은 작품을 담아올 것이다. 이 전시회는 이제 그 시작을 알리는 것이다.

2. 밀양의 속살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으면서 항상 고민하는 것이 현장성, 기록성, 예술성, 진실성 등이다. 그런데 여기서 현장성이나 기록성에 너무 치중하게 되면 저널리즘 사진에 가깝게 된다. 그렇다고 현장과 기록의 가치를 빼고서는 다큐멘터리 사진을 논할 수 없다. 그리고 그 사진 속에 삶의 진실과 사회의 모순(진실성)을 어떻게 표현해 낼지(예술성)는 평생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밀양을 다니면서 이인우의 밀양 다큐멘터리 사진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많은 훌륭한 작가들이 밀양 사진을 발표했었다. 그렇다 보니 나만의 밀양 사진에 대한 방향을 모색해야 했다. 저널리즘 사진보다는 다큐멘터리 사진을 담고 싶었다. 그렇게 내가 선택한 것이 밀양의 일상이었다. 움막을 비롯한 할머니들의 일상을 주제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일상은 사실, 일상이 아니다. 이미 송전탑 공사로 인해 일상은 파괴되어버린 상태에서, 진짜 일상을 지키기 위한 일상이었다. 빼앗긴 일상을 되찾기 위한 주민들의 일상에서 밀양의 아픔과 모순을 담고 싶었다. 당신들의 삶을 지키기 위한 싸움을 내가 그렇게 담을 수 있을지, 항상 고민하고 반성하면서 작업을 했다.
결과물은 역시 많이 부족하다. 긴 시간 밀양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밀양을 제대로 담아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밀양에서 경험했던 자연 환경의 문제, 민중생존권의 문제, 탈핵의 문제, 공권력의 폭력 문제 등등, 수많은 과제를 안게 되었다. 밀양은 내 사진이 가야 할 길을 깊게 고민하게 해준 고마운 곳이다. 이 전시회를 통해 다시 내 사진의 길을 진지하게 모색해 나갈 것이다. 대한민국이 곧 밀양이다.

제목 "바람보다 먼저"는 김수영 시인의 시 <풀>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풀은 바람보다 먼저 눕지만,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는 의미를 담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