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Moon-Ho

BLOW UP
2014-04-18 ~ 2014-05-03

현실과 인식의 간극, 그리고 그 너머

이영준(큐레이터, 김해문화의전당 전시교육팀장)



이문호는 끊임없이 본다는 것의 의미를 질문해온 작가이다. 그 질문은 작가에게 있어서 현실과 그것을 사유하는 의식사이에서 발생하는 ‘차이’에 대한 문제제기라는 형식으로 발현되어져 왔다. 가령 2007년에 제작된 'ego2'는 의자와 거울에 비친 의자가 등장하는 단순한 작품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실재로는 거울에 구멍을 뚫어 마치 거울에 비친 것처럼 거울 속 공간을 연출한 것이다. 같은 해에 제작된 이라는 작품도 마치 카메라의 볼록 렌즈로 촬영한 것처럼 모형을 실재로 제작한 작업이다. 이처럼 시각적 환영을 역설적으로 뒤집었던 작업들은 우리가 현실을 얼마나 왜곡해서 볼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이러한 정교한 모형작업들은 한국에서 조각을 그리고 독일에서 세계적인 아티스트인 기욤바일(Guillaume Bijl)에게서 설치와 사진을 배운 이력의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특히 기욤바일은 뒤샹의 소변기로부터 시작하여 워홀의 브릴로 박스, 칼 앙드레의 철판, 댄 플래빈의 형광등, 제프쿤스의 농구공 등 사물이 미술에 슬금슬금 진입하는 것을 넘어 아예 슈퍼마켓을 통째로 전시장에 재현함으로써 예술적 오브제와 일상적인 사물의 경계를 온전하게 없애버린 혁신적인 예술가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이문호에게있어 스스로가 사진작가인지 조각가 인지 설치미술가인지에 대한 불필요한 자의식은 없어 보인다. 오히려 작가는 이러한 형식적인 구분보다는 굳이 명명하자면 의제특정적(issue specific) 아티스트이자 리얼리스트의 면모가 느껴지기도 한다.

이문호에 대해 굳이 의제특정적이라는 타이틀을 붙이고자하는 이유는 그의 작업에서 일관되게 관통하는 뚜렷한 맥락을 발견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시각적 환영을 문제 삼았던 작가들은 미술의 역사상 너무도 많다. 하지만 이문호의 작업이 가지고 있는 예술적 성취는 시각적 일루전의 문제에 머무르지 않고 그 너머를 사유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미 작가가 제기했던 시각적 환영의 문제는 일루전이라는 전통적인 회화의 미학적인 개념에 시선을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앞서도 언급했지만 ‘현실과 의식 사이의 간극’을 보여주는 의미로 작동하고 있다. 뿐 만 아니라 작가는 2011년 를 제작한다. 장기밀매 현장을 재현한 이 작품은 현대인의 잔혹함과 도덕적 무기력을 표현하고 있다. 유디트는 이미 많은 작가들이 다루어왔던 소재이다. 카라바조와 젠텔리스키 그리고 클림트 등에 의해 다양하게 해석된 바 있다. 작가에게 유디트는 적장의 목을 밸 수 있는 잔혹한 인간상으로 의미화 된다.

뿐 만 아니라 이번에 전시되는'Seurea-Village'는 2006년 한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서래마을 영아유기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되었다. 탈색된 공간에 열려진 냉장고 문은 사건이 일어났던 당시의 상황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냉장고의 열려진 문틈으로 스며 나오는 창백한 조명은 을씨년스러운 사건의 기억을 더욱더 생경하게 호출하고 있다. 현대인들은 이러한 끔찍한 사건들을 말이나 텍스트로 받아들일 뿐이다. 자신이 피해자가 되면 견딜 수 없는 공포와 고통을 느끼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저 하나의 사건으로 스쳐지나간다. 그리고 이러한 사건들은 우리 삶의 도처에서 일어났었고 현재도 일어나고 있다. 작가는 뉴스와 텍스트로 지나가버린 이 사건들을 다시 공간으로 재구성한다. 마치 연극세트처럼 구성된 이 공간들은 사건을 그대로 재현하지 않지만 작가가 철저하게 연출한 것들이다. 비밀스럽고 수수께끼 같은 이 작품들은 중의적인 표현으로 더 큰 울림을 획득하고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는 새로운 작품들을 선보인다. 'blowup', 'RS'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상황을 연출해 낸다. 사다리나 계단실의 문은 어디론가 더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들이지만 이 둘이 겹쳐지면 용도가 폐기되는 역설이 생긴다. 뿐 만 아니라 허공을 향하는 사다리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현대인의 불가능한 욕망을 의미하는 이 작품들은 여전히 현실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어 보인다. 밤하늘의 별처럼 보이는 작업 'S'는 검은 종이에 구멍을 뚫고, 촬영하는 반대편에서 조명을 비춰 연출한 작업이다. 밤하늘을 바라보며 느끼는 숭고한 감정을 단숨에 비틀어 버린 역설적인 역작이다.

하지만 이번 전시의 의미를 관통하는 가장 문제적인 작업은 바로 'WITBD1'이다. 이 작품의 제목은 레닌이 1901년에서 1902년까지 집필한 “What is to be Done?”의 약자로 만들어 졌다. 이 책은 다양한 혁명이론들이 난립했던 시기에 공산주의 운동사에 큰 획을 그은 책으로 알려져 있다. 오래된 이젤에 덩그렇게 놓여 있는 텅 빈 캔버스를 통해 작가는 무엇이든 가능해져 버린 지금 이 시대에 가장 근원적인 질문을 자신에게 던진다. 이제 예술은 ‘What is to be Done?’ 과연 무엇을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