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Chon-Young

안천용 개인전 <귀국 첫 개인전>
2013-09-26 ~ 2013-10-09

끝에서 다시 시작하다

“서툰 한국말, 낯선 땅, 익숙지 않은 사람들.
하지만 일본에서의 삶을 모두 정리하고서라도 살고 싶은 경주.”

십여 년 전 그림을 다시 시작하고, 경주로 안식처를 옮기면서 붓을 잡은 지 넉 달이 채 되지 않는 재일교포사업가 안천용 화백의 한국에서의 새 삶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단순히 재일교포작가라는 그의 출신 배경만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보면, 망향(望鄕)으로 가득 찬 초가집이나 조선의 아낙, 앙상한 나무와 같은, 당시 비슷한 연배의 한국작가들이나 재일교포작가들에게 자주 보이는 모티브가 주를 이룬다. 게다가 색채는 당시 5, 60년대 변화와 격동의 시대를 불안과 치열함으로 살았던 일본의 젊은 화가들에게 자주 등장하는 붉은 원색이 곳곳에 눈에 띈다. 안 화백이 무사시노(武蔵野)대학 서양화과 재학 당시 스승이었던, 일본의 대표적 근대화가 중의 한 사람인 아소 사브로(麻生三郞) 역시 붉은 원색을 많이 다루었다는 점은 그것을 확실히 입증하는 듯하다. 하지만 일본의 시대적 색채나 재일교포의 망향의 마음만을 표현하는 듯한 이 모티브들 속에는 그가 기억하는 특별한 경험이 자리하고 있다.
‘가방 속의 누이’
이 말은 대중문화 속의 엽기적이거나 코믹한 에피소드를 가리키는 게 아니다. 필자에 의한 이 부제는 안 화백의 이번 가을 개인전 포스터에 사용된 <어머니_2013作> 의 모티브가 품고 있는 스토리이다. 이 여인은 쪽빛 주름치마에 흰색 저고리를 입고 있는 기억 속의 젊은 어머니로, 눈빛만큼은 생에 대한 의지로 반짝인다. 볕에 그은 얼굴과 팔뚝은 아직 마치지 못한 일을 하러 광주리를 머리에 인 것처럼 보이지만, 어머니는 집을 등진 채 남편이 있는 곳으로 떠나려 길을 나서고 있으며, 머리에 인 것은 뱃삯을 아끼기 위해 어린 딸을 숨긴 가방이다. 도대체 어머니가 어린 누이를 가방 속에 숨기면서까지 가려고 한 곳은 어디일까? 짐짓 그로테스크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 표현 속에는,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경제적 궁핍을 겪고 있던 조선인들의 상황을 악용해 많은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말로 속이고 일본으로 데려가 값싼 노동자로 전락시킨, 식민지 역사의 한 단면이자 안 화백 부친이 경험한 기억이 하나의 이야기가 되어 녹아 있다. 부친의 이러한 경험은 <이향(離鄕)>에서만 머물러 있지 않다.

‘꽃’의 이미지
흰 튤립과 노란 튤립이 나란히 피어 있는 <꽃_2013作>은 안 화백이 어느 날 읽은 시(詩)의 내용과 연결되어 있다. 일본으로 이주노동을 떠나 언제 돌아올지 기약할 수 없는 남편을, 엉겅퀴 꽃이 만발한 철원평야에서 기다리는 아내를 표현했다고 하는 이 시(詩)는, 안 화백 부친을 비롯한 당시 조선의 이주노동자가 겪었을 생의 고통과 맞물려 있으며, 이는 안 화백의 눈을 통해 굴절되어 튤립으로 투사된 것이다. 안 화백 자신이 평소에 좋아하는 튤립을 그렸지만, 이 꽃은 엉겅퀴의 꽃말처럼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의 ‘고독한 사랑’을 표현한 것에 다름 아니다.
이처럼 안 화백이 그린 것은, 오십 년 전 25살의 청년 화가로서의 꿈을 접으면서도 그리고 싶었던 그리움의 모티브였고 색깔이었으며, 기억이었다. 인생의 끝자락에서 다시 시작하는 모티브와 색채는 여기서 멈추고 마는 것일까? 그리움의 모티브나 붉은 원색은 최근작인 < 어머니와 아이_2013作 >이나 <꽃_2013作 > 속에 여전히 남아 있다. 하지만 거친 붓질로 인해 곧 못쓰게 되어버리고 만다는 안 화백의 붓들이 만들어 낸 화면의 거친 마티에르는, 지금 막 다시 시작한 그의 작업을 기대하게끔 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일(事)을 그리지 말고 물(物)을 그려라”
50년대 일본 전후시대를 살아내었던 화가이자 일본 근대화가의 한 거목이라 할 수 있는, 안 화백의 스승인 아소 사브로(麻生三郞)의 말이다. 이것은 회화에서 일(事), 즉 어떤 사건을 설명하는 조형보다는 물(物), 즉 조형 자체의 이미지나 화면 질감으로 사건을 즉감적으로 표현하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을 의미한 말인데, 이전 안 화백의 작업들, 이를테면 앞에서 보았던 <이향(離鄕)>이나 <그리움>의 화면에서도 이런 마티에르가 더러 보이기는 하지만, 오히려 작가의 스토리가 두드러져 그 존재감은 미비하다. 일(事), 즉 모티브에 얽힌 이야기를 그려왔던 것이다.
하지만 2013년에 그려진 최근작들을 보면, 스토리는 사라지고 거친 화면과 다양한 원색의 조형만이 살아있다. 게다가 반복된 붓질의 흔적 속에 허물어져 경계만 있는 조형들은 어떤 때는 한 덩이가 되어간다. 이제는 그리워하지 않아도 되고, 꼭 그리움을 말하지 않아도 된다. 그의 마음속에 경주의 산을 그리면 그것으로 산이 되고, 마을과 길을 그리면 마을이 되고 길이 된다.
자칫 어설퍼 보이고, 정리되지 않은 방을 보는 듯한 그의 최근작에, 오히려 생기를 느끼고 기대를 하게 되는 건, 이제야말로 안 화백의 거친 붓질이 만들어내는 울퉁불퉁한 질감―물(物)―이 그의 새로운 스토리―일(事)―를 즉감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했기 때문이 아닐까. 평생을 못 쓰게 된 복사 기계나 컴퓨터 부품 속에서 가치 있는 금조각을 찾아내는 리사이클업으로 성실히 일하며 살아온 안 화백에게, 스승 아소 사브로(麻生三郞)의 오래된 명언으로 다시 한 번 자신의 가치를 그림 속에서 발견하는 일은, 인생의 끝자락에서 시작하고, 선택한 그의 당연한 삶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 정 현 아 (미술평론가)